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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의 역사/유래

    먼 옛날 해안의 해자는 바다해자를 썼는데 그 당시 해안분지에는 뱀이 많아 주민들이 밖에 나가지 못 할 정도로 뱀이 많았다 한다. 그리하여 조선시대 초해안 주민이 시제를 지내면서 유명하신 스님 한분을 모시니 스님은 "뱀은 돼지와 상극이니 바다해 자를 돼지해자로 바꾸어 쓰면 되겠다."라고 일러주었다.
    그 다음부터 주민들은 돼지해자로 고치고 집집마다 돼지를 많이 길렀다고 한다. 그 후 신기하게도 뱀이 없어져서 주민들은 집밖 출입을 자유롭게 하게 되었다고 한다. 기록으로는 고려시대 이전에는 이 분지를 "번화"라고 불렀으며 그 후 "해안"으로 불렀다가 해안으로 바뀌었다가. 1885년 (고종32년)엔 해안면이 설치되기도 했다.
    1956년 휴전 후 난민정착사업의 일환인 재건촌 조성으로 100세대씩 입주시키며 농민들의 개척에 의해 마을의 틀이 만들어졌다. 원래 동면 관할 아래 있었던 해안 출장소가 1983년 전국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동면 북부를 분리 승격시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또한 6.25격전중 해안을 바라본 종군기자가 이곳을 형태를 본따 펀치볼이라 부른데서 세계적으로는 펀치볼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 조선시대에 현감이 거주하였고 지금의 면소재지가 있는 곳.

    : 큰 버드나무가 마을 안에 5그루가 있었다고 함.

    : 땅이 넓고 집터가 많다고 붙여진 이름.

    해안면의 유래

    : 양구군 해안면 설치

    : 광복과 동시 북한 강점

    : 인제군 서화면 해안출장소 편입

    : 정부입주계획에 의거 1차(160가구, 965명) 입주 '72. 4. 25(100가구, 472명) 입주

    : 행정구역 개편으로 양구군 동면을 편입되어 해안출장소 설치

    : 해안면으로 승격

    해안면은 전역이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 소재하고 있으며 분지 하나가 1개면을 이루고 있는 유일한 지역이다. 이 분지는 대암산(1,304m) 도솔산(1,148m) 대우산(1,179m)으로 둘러 싸여 있으며 동서 거리 8.5km, 남북7km, 분지 바닥의 평균 표고 400m의 거의 완벽한 원을 그리고 있다.

    1945년부터 50년 이후까지 북한통치와 전쟁을 겪으면서 차별화 된 문화를 형성하고 있으며, 지정학적인 위치 상 아직도 남아있는 미확인 지뢰로 인해 발생된 사고의 아픔은 아직도 곳곳에서 남북분단의 우리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민통선이란 지역과 분지라는 지형의 특성으로 인하여 다른 곳에서 발견되지 않는 동,식물 들이 풍부하고 안개가 끼는 아침에는 사방 아무곳이라도 안개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